[김광일의 자력갱생소⑦] 적정기술 에어컨을 (다시) 만들어보자

//[김광일의 자력갱생소⑦] 적정기술 에어컨을 (다시) 만들어보자

참 더운 여름이다. 마치 1994년의 여름을 떠올릴 정도로. 당시 대학 새내기였던 나는 매일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공부가 절대 아닌, 오직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해 여름은 단지 ‘더웠다’는 것으로만 기억되진 않는다. 훨씬 더 충격적인 일을 경험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해 가을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것을 생중계로 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건축물의 붕괴는 고도성장기 ‘한강의 기적’의 부작용일 것이다. 이듬해 삼풍백화점도 그렇다. 대충 서둘러 만들고 보자는 작자들의 생각 때문에 무고한 희생자가 속출했던 필연적 사고. 개선하겠다곤 했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달라졌을진 사실 의문이다.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단 생각은 그냥 느낌적인 느낌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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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올여름 더위는 상당하다. 올해 폭염으로만 동물 347만 마리가 폐사했다고 한다. 동물만의 문제가 아니다. 당장 필자의 부친도 8월 한여름 일사쇼크로 숲 속에서 응급실로 직행하셨다. 지금은 다행히 나아지셨지만, 아직 쇼크 후유증은 상당하다고 토로하신다. 절기상 더위가 그친다는 ‘처서’가 지났는데도 35도까지 치솟는 불더위는 여전하다.

필자가 기거하는 집 뒤에는 산이 있는데, 한여름에도 시원해 배산임수 입지가 왜 명당인지를 체감하며 살아왔었다. 당연히 에어컨도 없었는데 올해는 강제냉방이 불가피했다. 난방을 하고 있나 착각이 들 정도로 집안이 후텁지근했다. 에어컨을 풀로 돌리는 건  사치가 아니었다. 적어도 올여름만큼은 생존이 걸린 일이다. 당연히 전기요금은 평소의 4배가 나왔다. 사용량은 두 배 정도 되는데 말이다. 국회의사당인가 어디는 18도로 냉방 중이라는데 서민들의 생활공간 온도는 36.5도보다 높다. 마음이 훈훈한 건 좋은데 몸도 훈훈하니 이건 좀 아닌 것 같더라. 고통은 분담하고 즐거움은 나눠야 할 텐데….

그래서 적정기술 냉방을 생각해봤다. 지난번에 유튜브 영상을 참고해 페트병 에어컨을 만든 후 낮은 성능 혹은 무효과로 온갖 비난을 받았기 때문에 다시 재기하는 마음으로! 때마침 서울대학교 글로벌사회공헌단과 서울대학생들로 구성된 봉사유랑단의 요청으로 적정기술 에어컨, 조명, 난방기, 멧돼지 퇴치기를 개발할 기회도 생겼다. 후원해주고 마음껏 만들어보라고 하면, 뭐 이건 꼭 해내야 하는 재미난 일이다.

지난 8월 17일 적정기술을 공부하는 서울대 학생들과 강원도 평창의 한 마을을 찾았다. 함께 적정기술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또 주민들에게 직접 설치해주는 시간을 가졌다. 학교 측에서는 여름 방학 농촌봉사활동 대신에 기술봉사로서 기획했다고 한다.

글을 쓰는 지금도 무더우니 개인적인 고민의 과정은 생략하고 요점만 공개하겠다.

| 적정기술 에어컨을 만들어 보자

이번 아이디어의 포인트는 기화열이다. 기화열은 액체가 기체로 바뀌면서 주위의 열을 빼앗아가는 자연현상이다. 샤워 후에 피부의 습기가 마르면서 시원함을 느끼는 것, 선풍기로 땀을 식힐 때 시원하다고 느끼는 것이 기화열 때문이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생각해 내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보일러 배관에 많이 쓰이는 엑셀파이프를 생각했다가 결국 기각. 생각이 날 때까지 계속 동네 철물점과 대형마트를 돌아다녀야 했다. 그렇게 찾아낸 것이 알루미늄 주름관이다. 알루미늄은 열전도율이 높기 때문에 냉난방기에 적용하기가 좋았다.

알루미늄 주름관이다.

이제 이 관을 차갑게 만들면 된다. 안 입는 옷을 둘둘 감아볼까 했으나 재질과 형태가 균일하지 않아서 기각. 물티슈를 생각했으나 일상생활에서 쓰는 녀석은 너무 잘게 쪼개져서 10m나 되는 주름관을 감싸기에는 무지막지한 바느질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하니 역시 기각. 하지만 대안은 있는 법. 절단기가 들어 있는 ‘디스펜서용 물티슈롤’이 있었다. 재질은 부직포다. 매우 질기고 내구성도 좋다. (하지만 잘 썩지 않는다는 말이다. 생분해가 어려우니 환경에 나쁜 물질이다.) 게다가 가공하기 좋게 롤로 만들어져 있다. 이것을 알루미늄 주름관에 둘둘 감았다.

just like this!

자 이제 이것을 세로로 세우면(설치) 된다. 장소는 건물 외벽 그늘진 곳이다. 길이가 10m니 2~3층에 설치해서 1층으로 연결해야 한다. 주금관의 지름이 150mm라서 내부에서 원활하게 공기가 이동될 것이다. 콧구멍의 수백 배 크기니까 송배풍이 잘 될 것이다.

기화열을 발생시키려면 물티슈는 항상 젖어 있어야 한다. 이것은 바로 삼투압을 활용하면 된다. 빗물을 재활용할 수 있도록 통을 준비해서 그 안에 부직포(물티슈) 다발을 담가놓고 주름관 표면에 감아놓은 부직포와 연결하면 된다.

너무 빨리 말라버리거나 햇빛에 데워질 수 있으니 이렇게 그늘에 설치하는 게 좋다.
10m 짜리 주름관을 외벽에 설치했다.

드디어 완성. 이제 촉촉하게 젖은 물티슈에서 기화가 발생하고 차가워진 티슈는 알루미늄 주름관의 열을 낮추게 될 것이다. 냉각된 관 안의 공기는 내부 통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고 더운 공기는 위로 올라갈 것이다. 차가운 공기를 가축이 있는 곳이나 생활공간에 연결만 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적신 부직포의 다른 쪽 끝을 주름관에 묶어 관이 젖을 수 있도록 만든다.
이렇게 뜨거운 공기는 위로. 벌레가 들어가지 않도록 모기장을 달았다.

여기에 추가로 송풍팬을 설치하여 업그레이드하면 그 성능은 급격하게 올라간다. 기화를 촉진하고 내부의 냉기를 빨아들이도록 하면 된다.

이것이 기화열, 빗물 재활용, 삼투압, 대류현상으로 제작한 적정기술 에어컨이다. 서울대학교 학생들과 외부에 설치한 후 다음날 곧바로 실내용으로도 제작해봤다. 함께 만들어 보자.

| 실내용 에어컨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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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물

알루미늄 주름관, 물티슈롤(부직포), 케이블타이, 송풍팬, 의자 등

알루미늄관 표면에서 기화열이 많이 발생할수록 관 속의 공기가 식기 때문에 관의 길이도 길면 길수록 좋다. 다만 필자는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므로 3m 정도의 길이로 제작해 봤다.

돌돌 감기 전에 먼저 한 번 이렇게 꽉 묶어주자.
케이블타이로 묶어주고 이렇게 돌돌

이렇게 물티슈를 알루미늄 주름관 표면에 돌돌 감아준다. 약 1m 단위로 케이블 타이로 엮어 풀리지 않도록 고정시켜주자. 이제 거의 다 끝났다.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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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렇게 의자에 관을 돌돌 말아서 고정시켰다. 이제 바람이 나올 곳에 송풍팬을 설치하면 된다. 데스크톱 컴퓨터 본체 냉각용으로 쓰이는 녀석이다. (필자가 개발한 적정기술 공기청정기의 송풍팬 노릇도 이 녀석이 한다.) 알루미늄 주름관 끝부분을 두르고 있는 철사를 구부려 최대한 팬의 모양에 맞춰 주고, 바람이 새지 않도록 테이프로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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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하얀 물티슈들을 적시기만 하면 된다. 아래쪽에 물통을 설치할 것이다. 2ℓ 페트병을 잘라 물을 채우고 그 속에 길게 자른 물티슈용 부직포 한쪽 끝을 담갔다. 다른 쪽 끝은 위에서 완성한 관 구석구석에 닿을 수 있도록 펼쳐서 포개어주자. 점점 물을 흡수해 관을 덮고 있는 부직포들도 곧 젖을 것이다. 물론 위에서도 물을 뿌려주면 더 빨리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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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 안에 팔을 집어넣으니 약간의 냉기가 느껴졌다. 곧바로 온도를 측정해봤다. 효과가 있는지 확인을 해보아야 하니. 아두이노 온습도센서를 활용해 먼저 실내온도를 측정하니 29도였다.

실내온도는 29도를 가리켰다.

팬을 가동하고 팬 입구에 센서를 가져다 댔다. 잠시 기다리니 온도계 숫자가 27도를 가리켰다. 더욱 내려가지는 않았지만, 알루미늄관의 길이를 더욱 길게 만들었다면 온도도 더욱 떨어졌을 것이다.

송풍팬을 가동하고 온도 센서를 갖다대니 27도를 가리켰다.

선풍기만 틀어서는 온도가 떨어지진 않는다. 26~27도 사이가 우리가 에어컨을 틀지 말지 고민하게 되는 온도라고 하는데, 그런 점에서 오늘의 공정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혹자는 ‘냉각기도 없는데 에어컨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냉각기를 돌리려면 냉매도, 전기도 필요하기 마련이다. 이를 쉽게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적정기술이다. 하이엔드 기술도 적정기술을 위해 활용될 수 있지만,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로 값싸게 만들 수 있다면 더욱 의미 있을 것이다.

물론 기대만큼 효과가 나지 않을 수도 있고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면 자꾸 보완하고 개선해나가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면 된다. 이런 아이디어가 모이고 발전하면 다소 시원(?)한,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좋은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동네 개가 죽거나 가축이 폐사하는 것을 막을 순 있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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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전도율이 높은 알루미늄의 특성을 이용하면 겨울에는 적정기술 난방기를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예를 들면, 검은 비닐로 덮은 알루미늄 주름관을 실외로 두르고 태양열로 데워진 관 속의 공기를 실내로 순환시키는 것. 혹은 퇴비를 넣고 잘 밀봉한 상자 안에 알루미늄관을 넣어 퇴비에서 발생하는 열기를 이용해 더운 공기를 공급받는 방법 같은 것 말이다. 겨울이 올 때쯤 적정기술 난방기 제작에 도전해 봐야겠다.

강원도 평창 현장에서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라 만들어 본 적정기술 온풍기. 햇빛으로 관을 데우고, 태양열 패널로 돌아가는 송풍팬으로 관 속의 공기를 빼내는 원리다.
적정기술 온풍기 프로토타입.

* 2015년 12월부터 더퍼스트미디어에 연재하고 있는 김광일의 칼럼입니다.

[출처: 더퍼스트미디어] http://www.thefirstmedia.net/news/articleView.html?idxno=23670

By | 2018-06-12T23:14:14+00:00 2016/08/25|BLOG|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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